양주가 송나라로 갈 때 어느 객사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객사 주인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름답고 한 명은 못생겼다. 그런데 못생긴 부인은 귀한 대접을 받고, 아름다운 부인은 홀대를 받았다.
양주가 그 이유를 묻자 객사의 어린아이가 말했다.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아름다운 줄 모르겠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못생긴 줄 모르겠습니다.”
양주는 말했다. “제자들은 명심하라!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어디에 간들 아낌을 받지 않겠는가!”
이야기는 장자의 『산목』 편에 있는 글이다. 어려운 문자를 나열하는 대신, 장자는 소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로 나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모든 인간은 찬양받길 원한다. 지위가 높든 낮든, 남들로부터 받는 (혹은 받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찬양을 욕망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내가 어떤 평판을 받을지를 먼저 계산하고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내 자유의지라고 믿고 싶어 한다. 현실의 나와 상상속의 나 사이의 괴리만도 서글픈데, 남의 시선에 기뻤다, 우울했다를 반복하다 보면 삶은 경망스럽기까지 하다.
허영에 이끌린 내 생각과 행동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비교’라는 중요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위나 명예, 혹은 많은 돈을 가진 누군가를 쉽게 찬양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를 찬양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작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의 본의 아닌 오랜 칩거(?)를 끝내고 학창 시절의 옛 친구들을 만나러 돌아간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오래 비워 두었던 나의 공백이 없었다는 듯 나를 끌어안는 그들이 유난히 고마웠다. 그때였다. 누가 어떤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오래 접어 두었던 장면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내가 잘난 줄 착각하며 잘난 체하던 순간들. 그 장면들이 하나씩 되살아날수록,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결국 그런 행동들은 가장 가까운 내 사람들에게 그들의 열등함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폭력일 수 있었다는 것. 얼마나 꼴불견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내 행동을 용서해 주었던 것이다. 순간 등에 식은땀이 났다. 웃는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고개를 들기 어려울 만큼 부끄러웠다. 많이 후회스러웠다.
장자는 양주의 질문에 대한 머슴아이의 대답 한마디로 세상을 움직이는 그 강력한 힘, ‘허영’의 실체를 통쾌하게 간파해 버린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객사 사람들도 똑같이 허영의 존재라는 것을. 아름다운 부인이 자신의 미모를 인식하며 허영을 드러낼 때, 그것은 객사 식구들에게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운 줄 모르겠다”며 저항한다. 이것이 그들의 허영이다.
이 대목을 읽고서야 나는 허영이 폭력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못생긴 부인의 은밀한 허영이다. 외모를 둘러싼 투쟁이 시작되자 그녀는 외모에서의 비교 우위를 포기한다. 외적 아름다움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피력했을 테고, 결국 객사 식구들로부터 “우리는 그녀가 못생긴 줄 모르겠습니다”라는 반응을 끌어낸다. 이것은 추녀 방식의 허영인 셈이다. 결국 객사의 어느 누구도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객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작은 모형이다.
안타깝게도 허영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어쩌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라고 느껴진다. 늘 남과 비교되는 자리에서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쓸모없어 보이면 선택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허영을 익히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먹고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밀려나기 위해.
장자는 친절하게도 양주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제자들은 명심하라!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어디에 간들 아낌을 받지 않겠는가!”
Epilogue 1.
‘허영’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vanity다.
이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함께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서 1장 2절』
Epilogue 2.
영어 vanity는 ‘허영’을 뜻하기도 하고, ‘화장실의 세면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두 의미가 한 단어에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중세와 근대 유럽 미술에서 vanity는 종종 거울을 들여다보는 인물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시간이 흐르고, 실내 배관이 보편화되면서 화장대의 자리가 욕실로 옮겨간 뒤, vanity는 ‘욕실 세면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묘한 아이러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허영 앞에 서서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