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어느 날, 하늘이 잔뜩 흐렸다. 그런 날씨가 반가웠다. 이곳에선 드문 일이니. 가까운 언덕으로 향했다.
나무가 우거진, 산 다운 산은 최소 다섯 시간은 운전해야 닿지만, 여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충분히 가깝다.
눈앞이 온통 야생화였다. 유채꽃은 산 너머 산까지 물결쳤다.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아도, 들꽃은 온 세상을 뒤덮으며 스스로 피어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나에게는 아직도 농민의 피가 흐르나 보다. 마음은 훌쩍 떠나고 싶지만, 작은 땅에 뿌리 내리고 붙어 사는 삶, 포기가 쉽지 않다.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에, 이미 머리가 다 커서 이민을 왔다. 언어도, 생활도, 사람도 낯선 이곳의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리려고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시간을 갈아 넣었던가. 그렇게 버티고 노력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렇게 해서 얻은 작은 열매들에 매여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 어디로든 훌쩍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목민의 후손이었다면 어땠을까…”
난 그렇게, 끝없이 피어난 야생화 같은 생각들 사이를 헤치며 걸었다.
그러다 문득, 친구들이 생각 났다. 사진을 보내며 생각했다. “유목민이어도 전화는 터지는 곳으로 다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