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지독히도 찬란했던 내 청춘의 골목

인생의 모든 것은 항상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려 애써도, 모든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처음이다.

무겁고도 힘겨운 서울에서의 시간을 치른 뒤, 출국 전 하루가 내게 허락되었다.
재개발로 곧 사라질 그 오래된 동네를 필름에 담고 싶었다.

내 기억 속엔 아름다웠던 거리였기에 창백한 흑백보다는 색을 입혀주고 싶었다.
그건 아마도 아쉬움과 미련이 섞인 내 마음 때문이었을까.

준비해 간 필름은 모두 흑백이었고, 생각보다 서울에선 필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컬러 필름을 가까스로 구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남동, 그곳은 내 유년과 10대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오래도록 개발되지 않았던 달동네이기도 하다.

윤래, 창민, 성재, 명현, 성구, 미진, 영옥… 이런 친구들의 이름과
매일 걸어 다니던 그 길 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다른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구멍가게, 이발소, 목욕탕… 그 옛 모습을 찾아 나섰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회색 플라스틱 벽, 온 동네를 감싸는 삭막한 보드뿐이었다.
그 높은 답벽이 끝도 없이 둘러쳐진 것을 보고 속수무책의 황량함만을 느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추억들이 비와 함께, 조용히 스쳐갔다.

그때는 아무도 알았을리 없다.
그 모든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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