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kkaido, 2026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Project

이번 project, ‘Flower Field’는 지난 ‘Oak Study’와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Oak Study No. 10’이 그렇다. 그 사진에는 spotlight을 받는 절대적인 주인공이 있고, 주변의 모든 공간은 그 주인공을 위한 무대에 불과하다.

나는 그 사진 속에 내가 생각하는 완벽함을 억지로 구겨 넣으려 했던 것 같다. 결국 그 사진은 의도가 너무 많은 ‘Statement’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작가가 작정하고 설계한 감동이나 계획된 message는 관객에게 와닿지 않는다.

도대체 그때 내 message는 무엇이었을까? 고작해야 “나는 이만큼 잘났다” 정도?
그 작품이 몹시 부끄러운 이유다.

마음에 품은 그림이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그 마음속 그림을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당연한 논리였다. 줄곧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바꾸고 싶었다. 내 안에서 반란이 시작됐다. 내면의 목소리는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목표가 삶의 중심이라면, 지금 이 모든 순간은 그것을 위한 ‘수단’밖에 더 되나?”

그러니 지금껏 ‘현재’는 ‘불안’의 동의어였다.

Hokkaido를 내 작은 소요유의 실험장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즐거우면 계속하고 지겨우면 그만두는. 그러기 위해 8일간의 체류를 작정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원래의 ‘나’는 잠자코 따라오려 하지 않았다. 출발 며칠 전, 그곳의 공항들이 폭설로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기 가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는 탄식부터 터져 나왔다.

항상 목표만을 추구하는 내겐 여행에서도 목적지는 ‘작품’이였다. 그런 나에겐 폭설에 마비된 도시는 그저 ‘없어야 할 방해물’이었고, 눈 속의 Hokkaido를 여행하는 과정은 ‘빨리 지나가야 할 시간’일 뿐이었다.

누군가 날 지켜보기라도 하듯, 꼭 필요한 일은 절묘하게 때를 맞춰 벌어진다. 하늘은 여행 첫날 바보 같은 나를 눈 속에 처박으셨다. 그런데 눈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無用)의 시간’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편안해졌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목적’과 ‘쓸모’의 논리들은 마침내 침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애써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내 사진에 ‘쓸모없음’이 담기길 바랐다. 내가 ‘쓸모없음’을 의도적으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사진에 ‘쓸모없음’이 찍히길 바랐다.

내가 본 침묵과 여백, 공간과 존재, 그 위에 내려앉은 유구한 시간. 그리고 내가 경험한 그들과의 관계를 붙잡아 두고 싶었다. 완벽함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기억하고 싶었다.

‘쓸모없음’이 찍히길 바랐던 마음은, 사실 ‘앞만 보며’ 불안의 감옥에서 분투해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화해의 손길이었다. 미안함을 담은 위로 같은.

내 작품들이 무엇을 주장하기보다, 보는 이의 감정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사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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