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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kkaido, 2026

Projects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Project 이번 project, ‘Flower Field’는 지난 ‘Oak Study’와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Oak Study No. 10’이 그렇다. 그 사진에는 spotlight을 받는 절대적인 주인공이 있고, 주변의 모든 공간은 그 주인공을 위한 무대에 불과하다. 나는 그 사진 속에 내가 생각하는 완벽함을 억지로 구겨 넣으려 했던 것 같다. 결국 그 사진은 의도가 너무 많은 ‘Statement’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작가가 작정하고 설계한 감동이나 계획된 message는 관객에게 와닿지 않는다. 도대체 그때 내 message는 무엇이었을까? 고작해야 “나는 이만큼 잘났다” 정도?그 작품이 몹시 부끄러운 이유다. 마음에 품은 그림이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그 마음속 그림을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당연한 논리였다. 줄곧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바꾸고 싶었다. 내 안에서 반란이 시작됐다. 내면의 목소리는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목표가 삶의 중심이라면, 지금 이 모든 순간은 그것을 위한 ‘수단’밖에 더 되나?” 그러니 지금껏 ‘현재’는 ‘불안’의 동의어였다. Hokkaido를 내 작은 소요유의 실험장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즐거우면 계속하고 지겨우면 그만두는. 그러기 위해 8일간의 체류를 작정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원래의 ‘나’는 잠자코 따라오려 하지 않았다. 출발 며칠 전, 그곳의 공항들이 폭설로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기 가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는 탄식부터 터져 나왔다. 항상 목표만을 추구하는 내겐 여행에서도 목적지는 ‘작품’이였다. 그런 나에겐 폭설에 마비된 도시는 그저 ‘없어야 할 방해물’이었고, 눈 속의 Hokkaido를 여행하는 과정은 ‘빨리 지나가야 할 시간’일 뿐이었다. 누군가 날 지켜보기라도 하듯, 꼭 필요한 일은 절묘하게 때를 맞춰 벌어진다. 하늘은 여행 첫날 바보 같은 나를 눈 속에 처박으셨다. 그런데 눈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無用)의 시간’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편안해졌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목적’과 ‘쓸모’의 논리들은 마침내 침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애써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내 사진에 ‘쓸모없음’이 담기길 바랐다. 내가 ‘쓸모없음’을 의도적으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사진에 ‘쓸모없음’이 찍히길 바랐다. 내가 본 침묵과 여백, 공간과 존재, 그 위에 내려앉은 유구한 시간. 그리고 내가 경험한 그들과의 관계를 붙잡아 두고 싶었다. 완벽함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기억하고 싶었다. ‘쓸모없음’이 찍히길 바랐던 마음은, 사실 ‘앞만 보며’ 불안의 감옥에서 분투해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화해의 손길이었다. 미안함을 담은 위로 같은. 내 작품들이 무엇을 주장하기보다, 보는 이의 감정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사진이길 바란다.

May 17, 2026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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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

Stories

柳英夏. 꽃부리 영(英) -꽃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여름 하(夏), 내 본래 이름이다. 우리 항렬의 돌림자는 ‘하(夏)’ 자다. 가수 유재하가 나와 같은 항렬로, 사촌형뻘 되는 셈이다. 시원하고 낭만적인 그의 이름만큼이나 내 이름의 결도 마음에 든다. 마침 그해 여름 가장 뜨거웠던 날 태어난 내게, ‘찬란한 여름의 열정으로 주변을 따뜻하게 밝히라’는 바람을 담아 지어주신 이름이다. 얼마 전에 동생 주영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했다. 내 본래 이름이 ‘유영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영이가 물었다. “이름 좋네, 있어 보이는데? 근데 어쩌다가 용수가 됐어?” 아버지의 설명은 이랬다. 할머니께서 어디서 “이름이 안 좋다”는 말을 듣고 오셨는데 바꿔야 한다고 하셨단다. 여기서 “어디”라는 건 ‘점집’을 뜻한다. 즉 할머니가 어느 (용하다는) 점집엘 갔더니 점쟁이가 “이름이 나쁘니 아이가 불행해진다. 이름을 바꿔야 산다.”라고 겁을 준 것이다. 당시 엄마, 아버지 역시 부모님 말씀 잘듣는 20대의 젊은 아기 엄마 아빠였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난 졸지에 ‘영하’에서 ‘용수’가 됐다. 혹세무민. 그런데 그들의 작명 방식은 더 우습다. 한자의 획수를 세어서 길흉을 따지는데 아무런 과학적, 통계적 근거도 없다. 1900년대에 일본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용하다는) 점쟁이는 얼마의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이름을 바꿔놓았을까? 기막힌 일이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결정하지 못한 소리가 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갓 태어났을 땐 꽤 귀엽지 않았을까. 첫 아이였으니 어른들은 또 얼마나 반갑고 기쁘셨을까. 귀한 아이의 행운을 위해 좋다는 건 뭐든지 하셨을 게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그랬듯이. 주영이는 “유영하… 그래, 영하가 훨씬 더 있어 보여! 오빠, 진짜 안타깝네. 하하하” 그래도 난 “용수”라는 이름이 좋다. 평생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할머니와 부모님의 간절한 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May 3, 2026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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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ndane

Reflections

종종 그런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한번 떠오르면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내겐 Raul’s Taco Shack의 Fish Taco나 삿포로 맥주 생각이 그렇다. 그리고 이번엔, “커다란 film camera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그랬다. “앞으로는 굳이 멋진 풍경이나 예쁜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멋짐’과 ‘예쁨’을 쫓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생각보다 큰 해방이다.   지난 일요일 새벽 네 시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겐 거의 10년 만에 내리는 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비가 오지 않는다, LA엔. 아직 어두울 때 커다란 camera와 흑백 film을 챙겨 집을 나섰다. 6시쯤 Santa Monica beach를 지날 때쯤엔 비가 제법 거세게 몰아쳤다. 비가 와서 반가운 마음만으로 나선 것뿐이라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정처 없이 계속 갈 수도 없고, 차를 멈추자니 빗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Malibu 해안에 차를 세웠다. 한참 동안 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날은 점차 밝아졌고 비도 잦아들었다. 마침내 주위가 조용해졌다. 잠에서 깬 듯 차 바깥으로 나왔다. California 사막엔 mint 풀이 많다. 특히 비 온 날이나 이슬이 내린 날엔 민트 향기가 바람에 가득 퍼진다. 내 바지 자락이 민트잎을 스치며 비비면 그 향기가 폭발하듯 터진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향기가 터지며 피어오른다. 마치 내가 다른 세상의 하늘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때, 아직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앞에서 들려오는 천둥 같은 파도 소리!   “나마저도 예쁜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예쁜 사진들이 넘쳐난다. 어디에나 있다. 너무 많다. 공해다. 그런데 나까지 ‘예쁜 사진 공해’에 한몫 거들 필요가 있을까?   “The mundane.”   쉽지 않다. 예쁜 석양을 찍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그래서, 쉽지 않아서. The mundane에 더 끌린다.

April 14, 2026 /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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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out, 2초의 여백

Reflections,  Stories

“시야가 하얗게 지워진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진 것들에 관하여.” 아침에 눈을 떴다. 안경 없이 보는 천장이 흐릿하게 낯설다. 잠깐. ‘여기가 어디지?’ ‘난 누구지?’ 하지만 그 공백은 길어야 2초. 기억과 함께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그러고 나면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하아…그럼, 그렇지!” 어제는 일본에서의 운전 첫날이었다. 강요당하는 아찔한 역주행(좌측통행)에, 당황스러운 우측 운전대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지난 며칠간 내렸다는 2미터의 폭설까지 더해졌다. 도로는 눈으로 단단히 다져진 상태였다. 공항에서 렌터카(a Toyota sleigh, 아니, sedan)를 픽업했다. Toyota의 승차감이야 익히 알지만, 이 ‘썰매’를 멈추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눈은 쉬지 않고 내렸다. 어디가 땅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지역 일대는 대부분 꽃 농장이라지만 모든 것이 온통 새하얄 뿐이다. 도로보다 낮은 꽃밭은 발밑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눈이 쌓였다. 꽃밭에 내려서니 눈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 끝, 조그맣게 보이는 나무를 향해 2시간 가까이 걸었다. 걸었다기보다는 눈 속에 빠졌다가 기어 나오기를 반복했다. 누가 봤으면 실성한 사람이라 했을 게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길가에 세워둔 차에 올랐다. 10미터쯤 갔을까. 갑자기 왼쪽 바퀴 두 개가 밭에 빠지더니, 오른쪽 바퀴들은 허공에서 헛돌았다. 차는 완전히 눈 속에 빠져 꼼짝달싹 못 했다. 순식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가는 차를 기다렸다. 중국인 가족 두 팀이 차를 멈췄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까지 나와 차를 밀어 주었다. 한참을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난 오히려 그들이 다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들은 미안한 얼굴을 하며 떠났다. 나는 다시 기다리고, 다음 차를 또 세웠다. 내 또래로 보이는, 세련된 도시 분위기의 일본인 남녀 두 쌍. 일본의 어느 대도시에서, 시골로 여행을 온 듯했다. 그들에게 빌린 전화기로 렌터카 안내문의 “Foreigner 外國人” 전용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정작 전화를 받은 직원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우리는 잠시 함께 웃었다. 그들을 보내고 난 또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눈은 쉬지 않고 내렸다. 주변은 적막해졌다. 오후 네 시. 곧 해가 진다. 난 지나가던 큰 관광버스를 세웠다. 한인 관광버스였다. 한국 아저씨 6~7명이 나와서 차를 밀어도 보고 들어올리려고도 했지만, 플라스틱 범퍼와 펜더(fender)가 부서질 것 같아서 그것도 포기했다. 다행히 일본어에 유창한 가이드 아주머니가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당장 트럭을 보내라!”며 호통을 쳤다. 역시, 한국 아주머니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든 든든하다! 그녀는 “이제 늦어서 우리 뒤로는 지나가는 차가 없을 거예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정말로 그 뒤로는 아무도 지나가는 차가 없었다. 눈은 꾸준히도 내린다. 조금 전엔 눈처럼 하얗고 작은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건너다 멈춰 서서 한동안 나를 쳐다보다가 갔다. 2시간이 지났다. 세상은 이미 어두워졌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야 하나” 생각했다. 가이드 아주머니가 떠나기 전에, 얼른 QR 코드로 카카오톡을 연결해 주신 것이 생각났다. 전화를 했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 내가 다시 전화하겠다!” 그로부터 또 한 시간 후. 마침내, 아랫동네 렌터카 사무실에서 착해 보이는 30대쯤의 직원이 도착했다. 한참을 이것저것 시도하더니 사무실까지 왕복 한 시간을 다녀오겠단다. “삽을 가지고 오겠다”고 한다. 난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지만 웃음은 참지 못했다. 견인 트럭을 부르자고 했더니 “홋카이도에서는 눈이 오면 견인 트럭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뭔 소린지…) 다시 한 시간이 흐르고, 그 착해 보이는 30대쯤의 직원이 더 착하게 생긴 50대쯤의 아저씨와 함께 나타났다. 아저씨에겐 진한 담배 냄새가 났다. 타고 온 밴에 밧줄을 묶어서 내 차를 눈 속에서 끌어냈다. 드디어 내 차가 천천히 눈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 호텔 대욕장의 온탕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아침 잠결, 현실의 나로 돌아오기 전, 찰나 같은 순백의 유예는 종종 탈진하여 혼절하듯 잠든 다음 날 내리는 은총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상황에 빠졌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결국 나를 구한 것은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내밀어 준 타인들이었다. 도움을 준 이들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며 감사를 전하고 싶다. 세상을 온통 뒤덮은 눈보라는 차가웠지만, 사람은 참 따뜻했다. Epilogue 다음엔 같은 실수로 또 눈 속에 처박히고 싶지 않지만, 내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나도 모르니 과연 피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January 31, 2026 /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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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Reflections

이번 여행은 상당히 오랜 기간 기획하고 준비해 온 일정이다. 마침내 출발을 앞둔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밥이 나와? 떡이 나와?나는 왜 이렇게 사진에 열심일까.”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에 열심을 낼 수 있을까. … 여기까지 한숨에 달려온 나를 위해 떠난다. 2026-01-27 2026-01-29 2026-01-31-1 2026-01-31-3 2026-02-01-1 2026-02-01-2 2026-02-01-5 2026-02-08-2 2026-02-08-3

January 27, 2026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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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Reflections,  Stories

양주가 송나라로 갈 때 어느 객사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객사 주인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름답고 한 명은 못생겼다. 그런데 못생긴 부인은 귀한 대접을 받고, 아름다운 부인은 홀대를 받았다. 양주가 그 이유를 묻자 객사의 어린아이가 말했다.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아름다운 줄 모르겠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못생긴 줄 모르겠습니다.” 양주는 말했다. “제자들은 명심하라!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어디에 간들 아낌을 받지 않겠는가!” 이야기는 장자의 『산목』 편에 있는 글이다. 어려운 문자를 나열하는 대신, 장자는 소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로 나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모든 인간은 찬양받길 원한다. 지위가 높든 낮든, 남들로부터 받는 (혹은 받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찬양을 욕망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내가 어떤 평판을 받을지를 먼저 계산하고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내 자유의지라고 믿고 싶어 한다. 현실의 나와 상상속의 나 사이의 괴리만도 서글픈데, 남의 시선에 기뻤다, 우울했다를 반복하다 보면 삶은 경망스럽기까지 하다. 허영에 이끌린 내 생각과 행동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비교’라는 중요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위나 명예, 혹은 많은 돈을 가진 누군가를 쉽게 찬양하지 못하는 편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의 본의 아닌 오랜 칩거(?)를 끝내고 학창 시절의 옛 친구들을 만나러 돌아간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오래 비워 두었던 나의 공백이 없었다는 듯 나를 끌어안는 그들이 유난히 고마웠다. 그때였다. 누가 어떤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오래 접어 두었던 장면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내가 잘난 줄 착각하며 잘난 체하던 순간들. 그 장면들이 하나씩 되살아날수록,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결국 그런 행동들은 가장 가까운 내 사람들에게 그들의 열등함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폭력일 수 있었다는 것. 얼마나 꼴불견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내 행동을 용서해 주었던 것이다. 순간 등에 식은땀이 났다. 웃는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고개를 들기 어려울 만큼 부끄러웠다. 많이 후회스러웠다. 장자는 양주의 질문에 대한 머슴아이의 대답 한마디로 세상을 움직이는 그 강력한 힘, ‘허영’의 실체를 통쾌하게 간파해 버린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객사 사람들도 똑같이 허영의 존재라는 것을. 아름다운 부인이 자신의 미모를 인식하며 허영을 드러낼 때, 그것은 객사 식구들에게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운 줄 모르겠다”며 저항한다. 이것이 그들의 허영이다. 이 대목을 읽고서야 나는 허영이 폭력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못생긴 부인의 은밀한 허영이다. 외모를 둘러싼 투쟁이 시작되자 그녀는 외모에서의 비교 우위를 포기한다. 외적 아름다움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피력했을 테고, 결국 객사 식구들로부터 “우리는 그녀가 못생긴 줄 모르겠습니다”라는 반응을 끌어낸다. 이것은 추녀 방식의 허영인 셈이다. 결국 객사의 어느 누구도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객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작은 모형이다. 안타깝게도 허영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어쩌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라고 느껴진다. 늘 남과 비교되는 자리에서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쓸모없어 보이면 선택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허영을 익히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먹고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밀려나기 위해. 장자는 친절하게도 양주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제자들은 명심하라!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어디에 간들 아낌을 받지 않겠는가!” Epilogue 1. ‘허영’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vanity다.이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함께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전도자가 이르되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서 1장 2절』 Epilogue 2. 영어 vanity는 ‘허영’을 뜻하기도 하고, ‘화장실의 세면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의 뜻이 한 단어에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중세와 근대 유럽 미술에서 vanity는 종종 거울을 들여다보는 인물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시간이 흐르고, 실내 배관이 보편화되면서 화장대의 자리가 욕실로 옮겨간 뒤, vanity는 ‘욕실 세면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묘한 아이러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허영’ 앞에 서서 하루를 시작한다.

January 16, 2026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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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껍질이 얇아졌다

Reflections

생각해 보니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당신은 바닷게 같아요.” 그녀는 내게 말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살이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 껍질에 작은 구멍이 났어요. 그래서 너무 아프신 겁니다.” 한참 뒤에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난데없이 튀어나온 ‘게’ 비유에 터질 듯한 웃음을 꾹 참아 눌렀다. 당시 여러 차례 내 심리 상담을 해주셨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 그날은 지루한 상담끝에 배가 고프셨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때 나는 40대 초반. 한창 전문가적 냉철한 이미지를 내기 위해 (그게 좋은 줄 알고) 각 잡고 힘을 주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겉으론 강한 척해도, 속은 한참 연약하다는 걸 또래의 의사인 그녀는 금세 간파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알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주 여린 영혼을, 금세 깨질 것 같은 얇은 껍질이 겨우 감싸고 있는 존재. 그래서 나는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원래 천성이 단순한 나로선 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오래된 버릇이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결국 시간이 결정할 일이다. 그때 왜 의사와 상담을 했었던가? 분명 나의 어딘가가 고장났을 테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고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더 많다는 것. 그저 고장난 것들도 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건 그렇고 요즘 들어 내 ‘게 껍질’이 훨씬 얇아진 느낌이다. 쯧쯧쯧… ‘구멍’ 뚫리지 않게 조심할 일이다!

December 4, 2025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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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rtrait of Mario – Life, Legacy, and Laughter

Stories

Today I met Mario again after a very long time. I expected to see some changes in him, perhaps a little more age showing, but I was struck by how young he still looks. Over lunch, I learned he’s actually three years older than me, though he could easily pass for someone in his forties. His son Arturo recently became a dad, which makes Mario a grandfather now. I remember Arturo and his younger brother Julio as small boys; these days, both sons handle Mario’s business as naturally as if it were their own. Wanting to be close to his first grandchild, Mario even asked Arturo and his wife to move in so he could see the baby every day. Mario was born in Mexico, the fourth of eight children in a farming family. As a boy, he used to tell anyone who would listen that he was going to live in the United States one day, a dream so far-fetched that even his parents only smiled and shook their heads. Yet at seventeen, he crossed the border alone. He began with hard labor and, over the years, built a marble fabrication business that once employed forty-five people. I first met him around the time I began working in real estate, though I couldn’t quite remember how. When I asked him, he reminded me: he had been installing a marble countertop in a kitchen when I walked in. He mentioned he was planning to buy a house, and that’s how our connection began. Since then, we’ve shared many transactions together. When I think of Mario, what comes to mind first is his ease with life. He often said he never needed much money, and he truly believed that whatever he needed would find its way to him. Back in his school days, he would look from a distance at a bench under a tree and tell himself, _“There must be something there meant for me.”_ And, as if by design, there was always something waiting, at the very least a pencil.

September 21, 2025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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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rtrait of Roy: Hardworking Hands, A Humble Spirit

Reflections

Roy는 주말이면 RV를 몰고 사막으로 혹은 산으로 camping을 떠나는 사업가다.  내가 Roy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cold call을 돌리던 때였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였지만, 곧 대화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질문이 참 많았다. 계약 조건부터 시장 흐름, 투자 전망까지. 보통 이쯤 되면 상대방이 지치는데, 오히려 내가 먼저 숨이 찰 지경이었다. 그렇게 손님으로 알게 되어 그 후 몇년간 그의 임대용 건물 매매 몇개를 도왔다. 그러다 하루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형님, 혹시 한국에서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글쎄 — 그는 내 모교 후배였다! 갑자기 동네 친구처럼 반가워졌다. 그 후로도 한국에 다녀올 때면 예전 동네 이야기, 학교 소식들을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다. 그런 대화는 언제나 묘하게 따뜻하다.   Roy는 일에도, 삶에도 늘 열심이다. LA와 Las Vegas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면서도 늘 웃는 얼굴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그에게서 배운 건, 그의 겸손함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낮추고,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 덕분에 나도 그 겸손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선 Roy는 사업가이자 여행자, 그리고 한 명의 동네 후배로서 내게는 특별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번 주말의 초상은 단순한 초상화 사진 촬영 그 이상이었다.

September 3, 2025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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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okie Thief

Reflections

The Cookie Thief by Valerie Cox A woman was waiting at an airport one night, with several long hours before her flight. She hunted for a book in the airport shops, bought a bag of cookies and found a place to drop. She was engrossed in her book but happened to see, that the man sitting beside her, as bold as could be. . .grabbed a cookie or two from the bag in between, which she tried to ignore to avoid a scene. So she munched the cookies and watched the clock, as the gutsy cookie thief diminished her stock. She was getting more irritated as the minutes ticked by, thinking, “If I wasn’t so nice, I would blacken his eye.” With each cookie she took, he took one too, when only one was left, she wondered what he would do. With a smile on his face, and a nervous laugh, he took the last cookie and broke it in half. He offered her half, as he ate the other, she snatched it from him and thought… oooh, brother. This guy has some nerve and he’s also rude, why he didn’t even show any gratitude! She had never known when she had been so galled, and sighed with relief when her flight was called. She gathered her belongings and headed to the gate, refusing to look back at the thieving ingrate. She boarded the plane, and sank in her seat, then she sought her book, which was almost complete. As she reached in her baggage, she gasped with surprise, there was her bag of cookies, in front of her eyes. If mine are here, she moaned in despair, the others were his, and he tried to share. Too late to apologize, she realized with grief, that she was the rude one, the ingrate, the thief. 남의 호의를 잘못 이해했던 수많은 실수들, 그리고 내 마음을 전하려 했으나 끝내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이 짧은 시를 읽을 때마다 한꺼번에 되살아나 마음 깊은 곳에 큰 울림을 남긴다.

August 27, 2025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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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지독히도 찬란했던 내 청춘의 골목

Reflections

인생의 모든 것은 항상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려 애써도, 모든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처음이다. 무겁고도 힘겨운 서울에서의 시간을 치른 뒤, 출국 전 하루가 내게 허락되었다. 재개발로 곧 사라질 그 오래된 동네를 필름에 담고 싶었다. 내 기억 속엔 아름다웠던 거리였기에 창백한 흑백보다는 색을 입혀주고 싶었다. 그건 아마도 아쉬움과 미련이 섞인 내 마음 때문이었을까. 준비해 간 필름은 모두 흑백이었고, 생각보다 서울에선 필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컬러 필름을 가까스로 구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남동, 그곳은 내 유년과 10대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오래도록 개발되지 않았던 달동네이기도 하다. 윤래, 창민, 성재, 명현, 성구, 미진, 영옥… 이런 친구들의 이름과 매일 걸어 다니던 그 길 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다른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구멍가게, 이발소, 목욕탕… 그 옛 모습을 찾아 나섰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회색 플라스틱 벽, 온 동네를 감싸는 삭막한 보드뿐이었다. 그 높은 답벽이 끝도 없이 둘러쳐진 것을 보고 속수무책의 황량함만을 느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추억들이 비와 함께, 조용히 스쳐갔다. 그때는 아무도 알았을리 없다. 그 모든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Seoul_0145 Seoul_0144 Seoul_0140 Seoul_0136 Seoul_0128 Seoul_0129 Seoul_0125 Seoul_0113

August 6, 2025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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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rtrait of Lucas: His Quiet Smile, His Steadfast Heart

Reflections

촬영 내내 형은 잠시도 과장되지 않았다. 나는 오랜 벗의 평온함과 단단함을 필름에 담았다. 삶의 무게를 통과해 온 미소, 그것이 형의 초상이다. 토요일 오후, 형의 사무실은 고요했다. 보험 회사를 운영한 지 30여 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고 없이 닥치는 ‘불의의 사고’ 처리를 도와온 전문인의 사무실 창가에 토요일 오후의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형과의 첫 만남은 대학교 1학년, 사진 동아리에서였다. 매주 이어지는 크고 작은 촬영들과 설악산, 울릉도, 지리산으로의 신나는 여행으로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40년이라니 … 미국으로까지 인연이 이어질지 그땐 알지 못햇다. 형은 일주일에도 여러번 봉사 활동을 한다. 양로병원을 찾아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드리고, 곁에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그 무엇 보다도 즐거워한다. 학창 시절에도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후배들을 배려하던 사람이었다. 긴 세월 동안 그대로인 사람은 흔치 않다. 그의 꾸준한 섬김과 신앙은 존경스럽다. 형은 말수가 많지 않다. 대신 미소 속에 시간의 무게를 담고 있다. 삶이 던진 질문들 앞에서 그는 흔들리기보다 단단해졌고, 그 단단함은 소리 없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해보면, 궁금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매번 같은 목소리로, 같은 온도로 답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형을 통해 배운 것은 “믿음은 조용히 자신을 붙드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거창한 언변이나 과시가 아니라, 잔잔한 일상에서 드러나는 꾸준함이 진짜 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형은 보여준다.

June 25, 2025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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